HEE’S TRAVEL JOURNALTAIWAN / THE LONG READ

THE CITY, IN THREE CHAPTERS

성벽 아래에서 한 그릇의 아침까지

타이난에서는 오래된 역사가 박물관 안에만 있지 않다. 성벽과 사원, 골목의 음식이 매일의 삶과 연결된다.

타이난의 도시 풍경
타이난의 도시 풍경 · 이 사진은 아래 개별 장소의 현장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 Taiwantaffy · Public domain · 원본과 라이선스 ↗

타이난에서는 오래된 역사가 박물관 안에만 있지 않다. 성벽과 사원, 골목의 음식이 매일의 삶과 연결된다.

IMAGINED FIELD NOTE / 상상 여행 노트

그날의 장면

타이난에서는 하루가 식탁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뜨거운 국물 앞에서 지도를 접고, 안핑의 오래된 벽 앞에서야 다시 펼쳤다. 골목에는 사원과 가게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흘렀다. 역사의 순서를 외우려 하지 않아도 걷는 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이 조금씩 쌓이는 듯했다.

실제 방문담이 아닌 상상 여행 장면입니다.

CHAPTER 01

바다에서 시작된 도시

안핑의 바람을 맞으며 오래된 성벽을 보면 타이난의 역사가 섬 안쪽에서만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 일대를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삼고 젤란디아 요새를 세웠다. 그러나 이 땅은 그 이전부터 원주민의 생활 공간이었다. ‘누가 처음 왔는가’라는 단순한 질문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길이 어떻게 이 해안에서 만났는지를 묻는 편이 정확하다.

적감루의 전신인 프로빈티아 요새는 안핑과 다른 쪽에 세워진 정치·상업 중심이었다. 오늘의 적감루는 네덜란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단일 시대의 유적이 아니다. 이후의 통치와 재건, 종교와 도시 생활이 계속 층을 더한 장소다. 건물 한 채에서 기대한 ‘원형’을 찾기보다 여러 시대가 같은 터를 다시 쓴 흔적을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1660년대 정성공 세력이 들어오면서 권력의 주인은 바뀌었다. 그 뒤 청대의 행정과 이주, 사원과 상업이 지금의 구도심에 다른 결을 더했다. 안핑고보와 적감루를 같은 날 본다면 두 장소 사이의 거리와 옛 물길을 떠올려보자. 지도 속 가까운 점 두 개가 실제로는 바다와 항구, 정치 중심을 나눈 구조였다.

안핑고보를 설명할 때 종종 ‘대만의 시작’이라는 말이 쓰인다. 그러나 그 표현은 이전에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의 시간을 쉽게 지운다. 성벽을 보면서 무역 회사와 군대뿐 아니라 땅과 바다를 먼저 알고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함께 떠올려야 한다.

젤란디아와 프로빈티아의 관계를 지도에서 보면 항구와 내륙의 통제가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도시가 그 사이를 도로로 연결하기 때문에 두 장소가 가까워 보이지만 당시에는 물길과 해안 지형이 중요한 경계였다. 이동 중 창밖의 평평한 땅도 역사 읽기의 일부다.

CHAPTER 02

골목의 신앙과 생활

타이난은 오래된 수도라는 이름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그 무게는 거대한 광장보다 작고 촘촘한 골목에서 느껴진다. 문묘와 사원, 시장과 가게가 여러 블록 안에서 만난다. 종교 공간은 ‘관광 명소’이기 전에 주민이 드나드는 장소다. 사진을 찍기 전에 향을 올리는 사람의 동선과 쉬는 공간을 먼저 살피면 이 도시의 예의를 배울 수 있다.

신농가처럼 새롭게 조명받는 거리는 오래된 건물의 외관과 현재의 상점이 함께 만든다. 옛 간판을 남겨두는 것과 새 가게가 들어와 임대료를 바꾸는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재생된 골목의 아름다움만 볼 것이 아니라 한낮과 밤, 한 블록 안의 다른 생활도 같이 보아야 한다.

일제 통치기의 흔적 역시 구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린백화점 같은 건물은 현대적 소비 공간이 어떤 권력과 시대 속에서 등장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지역 디자인 상품을 고르는 장소지만 건물의 역사까지 알고 나면 쇼핑의 동선이 작은 건축 여행이 된다.

문묘나 사원의 색과 지붕을 감상할 때 참배하는 사람의 손동작을 먼저 보자. 생활 속 신앙은 관광객이 떠나도 계속된다.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한쪽에서 기다리는 작은 예의가 이 도시의 문화에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이다.

타이난의 골목에는 보존된 외관과 실제로 바뀐 실내가 공존한다. 복원된 문과 새로 단 에어컨, 오래된 간판과 새로 열린 카페가 충돌할 때 그 모순을 숨길 필요는 없다. 오래 산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다른 필요와 협상한다는 뜻이다.

CHAPTER 03

아침 식탁이 기억하는 역사

타이난의 하루는 아침 식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밀크피시 수프, 우육탕, 작은 국수 그릇은 화려한 연회가 아니라 반복된 지역 생활에서 힘을 얻었다. 해안의 양식과 어업, 시장의 유통, 가게마다 이어온 조리법이 한 그릇에 얹힌다. 메뉴를 고를 때 ‘대표 음식’ 목록을 외우는 것보다 어느 시간에 누구와 먹는지 보는 편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도소월의 단짜이몐처럼 작은 양의 국수는 한 번에 많이 먹기보다 여러 맛을 이어 먹는 타이난 여행과 잘 맞는다. 거리와 골목 사이에는 낮에 문을 여는 가게와 밤에야 활기를 띠는 가게가 섞여 있다. 화원 야시장의 운영 요일이 여행과 맞지 않는다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야시장은 도시의 한 장면일 뿐, 타이난의 식탁 전체는 아니다.

안핑의 성벽에서 시작해 저녁의 신농가에서 하루를 끝내면 역사와 현재가 의외로 가까워진다. 한 도시를 배우는 일은 사건의 연표를 외우는 것만이 아니다. 그 사건이 남긴 길을 걷고, 그 길의 가게에서 음식을 먹고, 다시 건물의 이름을 읽는 반복 속에서 비로소 타이난이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한 그릇을 먹기 전 오늘의 생선과 국물의 온도를 묻는 경험은 박물관의 설명과 다르지만 같은 역사 수업이 된다. 바닷가 도시의 재료가 시장을 거쳐 아침 식탁에 오른 경로를 생각해보자. 음식의 유명세보다 유통과 노동의 이야기가 길게 남는다.

낮의 사찰과 밤의 노점은 별개의 관광 장르가 아니다. 둘 다 주민이 시간을 나누고 동네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타이난에서 많은 장소를 빠르게 소화하기보다 같은 길을 두 번 걷고 다른 시간의 문을 발견하면 도시의 밀도가 조금씩 보인다.